융합인재 수업(STEAM/프로젝트)

STEAM 심화 연수에서 얻은 통찰

종보샘 2019. 1. 18. 16:10

STEAM 심화 연수에서 얻은 통찰

(부제; STEAM 교육의 열쇠는 교사의 흥미에 있다)


(2018년 제12호 울산과학에 실린 글)

무룡초등학교 교사 김종보


  1. 들어가며

 필자는 2009년부터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지원하는 생활과학교실 강사 활동을 시작으로, 2012년도에는 STEAM 리더스쿨(연구학교)에서 STEAM 교육에 참여해 2013년에는 UNIST, 과학창의재단, 한국전기연구원과 함께 STEAM 프로그램 개발 연구원으로서 활동하였습니다. 2014년도에는 KAIST STEAM 심화 연수 멘토 교사로 참여하였고 2015, 2016, 2018년도에는 울산광역시교육청 융합인재 교육(STEAM)활성화지원단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생활과학교실부터로 치면 10년 차, 연구학교부터로 치면 6년 차 STEAM 교육 관련 교사로 볼 수 있겠습니다. 제가 이런 경력을 이야기하며 시작하는 이유는 일개 교사가 STEAM 교육에 대해서 이러면 좋겠다, 저러면 좋겠다고 하면 전문성이 모자란 아마추어의 훈수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저어되기 때문입니다.

 올해 여름방학을 맞아서 저는 KAIST에서 하는 STEAM 심화 연수의 연수생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멘토 교사가 아닌 연수생으로 약 4년 만에 참여한 이번 연수를 통해서 제가 얻은 통찰을 독자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통찰이라 하니 좀 거창해 보이니 그냥 옆 반 선생의 연수 이야기라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STEAM 심화 연수 이야기

 STEAM 심화 연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특강과 체험으로 STEAM 교육 소개와 연수 안내, 첨단 과학 분야의 명사를 초청한 특강과 예술가들과 협업한 Artience(Art+science), 멘토 교사들의 STEAM 프로그램 체험이 한 부분, 첨단과학기관과 연구소를 방문하는 현장체험학습이 두 번째 부분, 현장적용이 가능한 수업지도안 개발이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기초연수 등에서도 특강과 STEAM 교육 체험, 지도안 개발 등의 내용이 있으니 STEAM 심화 연수가 다른 연수와 사뭇 다른 것은 연구소를 방문하는 현장체험학습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014년도에는 기계 과학 분야의 연구소를 방문했었는데 이번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韓國標準科學硏究院, Korea Research Institute of Standards and Science, KRISS)을 방문했습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국가 측정표준 대표기관으로 길이, 시간, 질량 등 국가측정표준 확립 및 유지 향상, 첨단 산업에서 필요한 새로운 측정과학기술 및 평가 기술 개발, 산업체 측정기기에 대한 교정/시험 및 인증표준 물질(CRM) 보급을 주로 하는 기관입니다. 그곳에서 세 분의 연구원을 만나서 표준과 관련된 연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분은 황종률관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시며 국립과학관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할 체험프로그램을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체험프로그램은 아크릴 관이나 금속관(동관)의 길이에 따른 음의 파장(주파수)이 다름을 알고 음의 표준주파수를 맞추는 일련의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교사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라서 그런 것인지 매우 세세하고도 정확한 내용과 기준으로 말씀을 하셔서 ‘아, 나는 이쪽으로 소질도 없고 많이 공부한 것도 아니라서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도 어렵고 하니 이 분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안 되갔구나.’하는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황종률관은 조선 시대 박연(朴堧: 1378∼1458)이 국악의 기본음을 중국음악과 일치시키기 위해 만든 척도로서 국악의 기본음인 황종음을 낼 수 있는 황종율관(黃鐘律管)의 길이를 결정하는 데 쓰였습니다. 세종 7년에 박연이 해주산 검은 기장 100알을 나란히 쌓아 그 길이를 황종척 1척으로 정하였습니다. 즉, 기장 한 알의 길이를 1분으로 하고 10알을 쌓아 1촌으로 하여 9촌을 황종의 길이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1촌을 더하여 황종척 1척으로 삼았습니다. 황종은 12 음률의 기본음으로 가장 깁니다.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황종관(黃鐘管)의 길이는 9촌, 둘레는 9분, 옆면의 넓이는 810분이고, 거기에 기장알 1200개가 들어가면 황종률에게 맞는다고 하였습니다. 황종척은 세종 이후 모든 척도의 기준 척이 되었습니다. 뒤에 세조 때 영조척(營造尺) 1척의 길이인 동율관(銅律管)이 내는 소리가 황종음이 되도록 해서 기본음 율관을 변경했습니다. 오늘날 문묘(文廟)와 종묘(宗廟) 제례악 연주 시의 황종음은 이 음으로 연주되고 있지만 평조(平調) 악곡의 황종음은 횡종척 길이 7촌 1분 1리인 고선율음또는 7촌 4분 9리인 협종율음(夾鐘律音)을 취하고 있어 세종 때 정해진 황종음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박흥수, 『한국의 도량형』, 국립민속박물관, 1997ㆍ이우태, 『한국 고대의 척도』, 태동고전연구 창간호, 1984 참고) 그리고 국악기가 내는 12율(律)은 12간지와 12달(月)로 푸는데, 현악기의 몸통 부분 중 위가 둥근 것은 하늘을, 아래가 평평한 것은 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 음악적 특성이 우주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악기의 발생, 쓰임, 구조 그리고 그 의미도 모두 이러한 음양 오행적 우주관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대의 문묘 제례악은 세종 시대 제례악과는 그 음이 사뭇 다른데 그 이유는 그 당시의 황종률과 현대의 황종률이 다르기 때문이며 국립국악원에 이야기를 해보니 다른 서양악기와의 협연 문제도 있고 세종 때의 황종률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길이 표준을 다루시는 연구원께서 음악(악학궤범, 황종음, 황종척), 역사(세종, 박연), 동양철학(주역, 음양오행), 물리학(주파수, 파장, 1m는 빛이 진공에서 1/299 792 458초 동안 직행한 거리), 수학(1/2, 1/3 비율의 차이, 평균, Calibration)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드시며 이야기를 해주시니 그 방대함과 엄밀성에 질려 이것을 다룰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연구원을 방문하고 나서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지만, 연수의 마지막 부분인 수업지도안 개발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은 연수생들과 멘토 교사가 함께 조별로 아이디어를 내어서 지도안으로 구체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연수생들은 저처럼 다년간 프로그램 개발 경험이 있으신 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처음 STEAM 연수를 접한 분들이었습니다. 담당 학년도 1학년, 4학년, 5학년, 6학년, 전담 등 다양해서 조별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가 힘든 환경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모여서 온갖 아이디어를 던지다 보니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전에 단위를 가르치며 암행어사가 가지고 다녔다는 유척을 알게 되어 암행어사 이야기를 통해 표준을 다루고 표준음에 맞춘 악기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구안하였습니다. 유척은 놋쇠로 만든 자를 말하는데, 암행어사에게는 대개 두 개의 유척을 지급했다고 합니다. 이 유척에는 조선 시대 악기제조에 쓰인 황종척과 곡식을 잴 때 쓰인 영조척, 포목의 길이를 재는 데 쓰인 포백척은 물론, 제사 관련 물품을 제작할 때 쓰인 예기척과 토지 길이를 잴 때 쓰인 주척까지 총 5가지의 척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척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옛이야기(암행어사)와 음악에 담겨 있는 수학과 과학을 다루면 아이들이 생활 속에 있는 수학과 과학의 원리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암행어사 관련 설화를 이야기해주고 표준(‘어떤 양을 재는 기준으로 쓰기 위하여 어떤 단위나 어떤 양의 한 값 이상을 정의하거나 현시하거나 보존하거나 재현하기 위한 물적 척도, 측정 기기, 기준물질이나 측정 시스템’-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표준이 없어서 즉, 기준이 서로 맞지 않아서 벌어졌던 경험을 이야기해보고, 악기를 만들어 표준음(음높이를 규정할 때에 기준이 되는 음. A음을 440Hz로 정한 것을 국제 표준으로 하고 있음.)에 맞춰 조율하고 조율된 악기를 연주해보는 활동으로 STEAM 프로그램을 개발하였습니다.

 다른 선생님은 1학년 담임으로서는 도저히 이 프로그램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라고 하시며 1학년에 맞춘 프로그램을 구안하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표준시간’에 착안하여 1~2학년 교육과정(수학 1학년 2학기 5단원 시계 보기와 규칙 찾기)과 남북한회담에서 남북한 ‘표준시간’이 맞지 않아 일어난 일을 동기유발로 하여 시계 보기 활동으로 내용을 구성하셨습니다. 

 또 다른 선생님은 1학기 때 즐겁게 활동했던 UCC(User-Created Contents, 일반인이 만든 동영상, 글, 사진 따위의 제작물)만들기와 본인의 악기 연주 경험(바이올린, 기타)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막 귀와 절대음감이라는 이야기로 음감을 시험해보는 앱을 활용해서 절대음감(표준음)을 찾아보고, 표준음을 토대로 뮤직비디오 시나리오를 만들어보고, 그것을 토대로 녹화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어보는 활동으로 구성하셨습니다.

 이처럼 각자 다양한 관심사와 경험을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현장적용을 남겨두고 집합 연수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3. 심화 연수에서 얻은 통찰

  가. STEAM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는 학생의 흥미와 현재 상태에 맞추어 수업을 디자인할 수 있는 현장 교사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연구원이나 대학 등에서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이 과학기술 현장에서 최신 과학기술을 경험하고 관련 분야로 진학 및 진로를 설계할 수 있는 토론ㆍ실습ㆍ체험 중심의 프로그램인 아웃리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은 학생들의 근접발달영역(러시아어: зона ближайшего развития, 영어: zone of proximal development, ZPD 자세한 내용은 『교사와 부모를 위한 비고츠키 교육학』 유리 카르포프 저/실천교육교사번역팀 역, 살림터, 2017 참조)에 맞추어 프로그램이 구성되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수준에 맞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내용으로 구성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화 연수에서 현장 교사들의 프로그램 개발 사례로 볼 수 있듯이 현장 교사들은 학생의 수준에 맞게 내용을 적정화하고, 교육과정과 연관된 내용을 찾아내 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설명방식으로 수업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아웃리치 프로그램이 좋은 내용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현장 교사들의 감수를 통해 그 수준과 방향이 잘 조절되어 보다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장 교사들은 현장의 최신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고 오개념을 만들 수 있는 수업을 디자인하는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원이나 대학 등의 연구기관에서는 현장 교사의 의견을 듣고 현장 교사들 또한 연구기관의 의견을 듣는 상호협력이 필요합니다.

  나. 과학과 수학의 흥미를 높이는 학생을 기르려면 과학과 수학에 흥미를 느끼는 교사를 많이 확보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STEAM 프로그램을 개발하든 개발하지 않든 결국 교실에서 수업하는 사람은 교사입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찾아서 교과 시간이나 비교과 시간에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과정에서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한 교사의 흥미도 학생에게 전이됩니다.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을 선택하고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사가 과학과 수학에 흥미가 있다면 최신 과학기술이나 재미있는 수학 내용을 학생에게 가르쳐 학생도 자연스레 수학과 과학을 좋아하는 태도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교사들이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느끼도록 할 수 있을까요?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저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먼저 교사들이 관심을 가지는 첨단 과학이나 수학 연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사전 연수설문에서 요구가 많은 연수를 개설하여 과학과실험연수와 같은 의무연수가 아니라 흥미와 주제 중심의 연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STEAM 연수나 연구회 등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한 교사를 강사로 초청하여 그 전문성과 명예를 드높여주는 것입니다. KAIST STEAM 심화 연수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개발한 선생님을 다음 연수에 멘토 교사로 초청하는 것이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4. 마치며

 핀란드 헬싱키市는 정부의 교육개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헬싱키 뉴스쿨 프로젝트 2016~2019’를 시행 중이며, 2019년까지 만7~16세 학생의 세계의 현상을 학제 간 연구를 활용해 맥락적・총체적으로 다루는 교육인 현상기반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을 의무화하고 교과서・책상・학교 없는 학교 등 혁신적 교육 정책을 도입 중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급식>을 주제로 진행된 카우하바(Kauhava) 지역의 7학년 학생들의 수업은 화학, 수학, 종교, 가정, 사회 수업을 아래와 같은 주제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화학: 음식의 신선함은 어떻게 유지될까?

수학: 식재료의 가격, 급식 가격은 어떻게 형성될까?

종교: 특정 음식이 제한되는 종교를 가진 학생에 대한 학교급식의 식단은?

가정: 학교급식의 균형 잡힌 한 끼 구성은?

사회: 핀란드의 무상교육, 무상급식 제도의 역사와 특징은?

 이처럼 총체적으로 해당 주제를 탐구하는 학습은 전통적인 수업과정에서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초연결 사회’에 필요한 4C, 의사소통(communication), 창의성(creativ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협력(collaboration)을 강조하는 주제 접근방법으로 변화하는 과정이고 이것이 이른바 우리나라의 융합 수업,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역량중심교육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STEAM 교육은 그 총체적 접근법에서 수학과 과학을 강조한 융합 교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느낀 전문적인 교사가 많아질수록 STEAM 교육이 현장에서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