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보 독서록

비고츠키와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을 위하여 앤디 블런던, 피터 페이겐바움, 제임스 랜톨프, 일라나 레모스 데 파이바, 라비니아 로페스 살로마웅 마지올리누 저 외 8명 | 살림터 | 2020..

종보샘 2020. 11. 5. 12:42

책을 읽고 덜 정리되었지만 독서록을 남겨 본다.

나의 결론은 비고츠키와 마르크스와의 관계를 밝혀 앎을 넓히지만, 굳이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을 도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일반 심리학을 대체할 문화 심리학이면 족하다.

목차

추천사 | 비고츠키의 복원과 마르크스주의의 재발견·천보선 2
서론 | 비고츠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의 복원과 발전을 위하여 칼 래트너·다니엘레 누네스 엔히크 실바 2
1부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을 향하여 2
1.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비고츠키의 문화심리학, 정신분석학 : 과학과 정치학의 이중나선구조 칼 래트너 2
1.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비고츠키 2
[질문]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은 무엇인가? 심리학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본 것인가? 4
2. 사회적 의식에 관한 마르크스 이론의 원리: 과학과 혁명의 이중나선구조 4
[질문] 그러나 간명하고 정합적인 체계는 단순한 환원주의로 수렴하지 않는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5
3. 마르크스의 사회의식 분석을 심리학에 적용하기 5
[질문] 교차문화심리학(비교문화심리학)은 왜 거대 변인들이 파편화되고 추상적이고 탈역사적이고 탈정치적인가? - 126쪽 6
[질문] 저자는 인간의 의식과 지각은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그러한 문화는 사회 체제를 바탕으로하고 있으니 그 사회체제를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혁명을 통해 전복하자는 것이 아닌가? 6
[질문] 문화심리학으로 비고츠키를 포섭하지 않고, 왜 굳이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으로 비고츠키와 문화심리학을 포섭하려하는가? 6
[질문] 이성적 사고와 해방적 정치 신념에 입각한 진정한, 개인적인, 주체적인 욕망이란 무엇인가? 6
4. 비마르크스주의 심리학 이론을 마르크스주의 심리학과 통합하기 7
[질문] 거시문화심리학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 양립하지 않거나 대립적인 측면은 전혀 없다면 같은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지 않나? 7
2부 비고츠키 심리학의 마르크스주의적 인식론과 방법론 7
2. 비고츠키 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의 토대 리지아 마르시아 마르틴스 8
3. 인간 발달에서 노동, 의식, 기호의 문제 다니엘레 누네스 엔히크 실바·일라나 레모스 데 파이바·라비니아 로페스 살로마웅 마지올리누 8
4. 비고츠키 과학의 생식세포 앤디 블런던 8
5. 비고츠키 심리학 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들 피터 페이겐바움 8
비고츠키의 역사 분석: 역사의 결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8
[질문] 엥겔스의 도구 사용의 능숙도에 따른 선택적 양육설(진화)은 지금도 유효한가? 8
[질문] 정신 발달의 보편 이론이 정립되었는가? 정립될 수 있는가? 9
생각과 말: 생각과 말 사이의 긴장이 상이한 생물학적 단계와 상이한 발달 단계를 낳는다. 9
낱말 의미: 분석 단위인 '낱말 의미'가 시기별, 규모(scale)별로 어떻게 언어적 사고에 적용되는가? 9
개인적 말: 언어적 사고가 개인에게 자기화되는 과정(기능적 내면화) 9
혼잣말에서 내적 말로의 구조적 전환: 자기조절과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근간 10
결론: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비고츠키의 발달 과정과 이행 사이의 형식적 유사성 10
[질문] 비고츠키의 심리학 구분은 아직도 유효한가? 10
정신은 문화로부터 독립되어 있는가, 아니면 서로 얽혀 있는가? 10
3부 비고츠키 마르크스주의의 심리학적 적용 19
6. 상상력과 창의 활동 : 비고츠키 이론에서 존재론적 원리와 인식론적 원리 카티아 마헤이리·안드레아 비에이라 자넬라 19
7. 비고츠키의 방법론적 이론틀 속의 유물 변증법 : 응용언어학 연구를 위한 함의 제임스 랜톨프 20
8. 비고츠키에 대한 구성주의적 해석 : 이론적-방법론적 언어 개념 연구 에두아르도 모우라 다 코스타·실바나 칼보 툴레스키 20
[질문] 구성주의가 왜 절충주의인가? 20
[질문] '체화된 인지' 접근과 비고츠키적 관점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22
찾아 보기 22
옮긴이의 말 22
[참고자료] 22
변증법적 유물론 위키 22
<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 > 24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접근과 학문간 융합 25

추천사 | 비고츠키의 복원과 마르크스주의의 재발견·천보선

서론 | 비고츠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의 복원과 발전을 위하여 칼 래트너·다니엘레 누네스 엔히크 실바

구체적 일반론 vs 추상적 일반론 - 일반론의 기초를 이루는 여러 요소(구체성)를 알고 있지 않으면 공허한(추상적) 일반론에 머무를 뿐이다.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간은 끊임 없이 노동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그래서 생산효율을 높이고 잉여시간을 가지지 않았나? 노동이 신성한 것인가? 고된 노동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 아닌가?

 

1부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을 향하여

 

1.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비고츠키의 문화심리학, 정신분석학 : 과학과 정치학의 이중나선구조 칼 래트너

1. 마르크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비고츠키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은 마르크스주의와 심리학이라는 두 영역의 변증법적 통합이다. - 67쪽.

72쪽

 

정신기능들이 구획화되고 서로 차별적인 정신 요인들을 통해 생물학적으로 원래부터 형성되어 있는 모듈인지, 혹은 대뇌피질이 피질 중추의 내적 특성을 통해 정신 특질을 결정하는 대신, 문화적인 속성과 기원, 형성, 기능을 지닌 정신 특질을 처리하는 보편적인 기관인지의 여부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증거는 후자의 편에 있는데,(후략) - 73쪽

 

심리 현상들이 문화적 요인이나 과정에 의해 형성되는 원리를 설명하는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이것은 마르크스주의를 주관성subjectivity과 의식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 73쪽

 

기존 사회 체제를 비판하고 그것을 보다 완전한 방향으로 재조직하기위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은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의 핵심이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심리학 이론과 방법론, 적용법 속에 정초되어야 한다. - 74쪽

[질문]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은 무엇인가? 심리학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본 것인가?

2. 사회적 의식에 관한 마르크스 이론의 원리: 과학과 혁명의 이중나선구조

마르크스는 사회적 의식이 사회조건과 사회구조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보았다.

  1. 사회적 의식은 사회조건(거시문화요인macro cultural factors)에 의해 조건화된다. 

  • 진화론적 경향성을 띠고 있는 환경적 의식 이론. 사회적 의식은 개별 요소들의 총합 이상의 통합적인 게슈탈트(Gestalt, 개개의 감각적 부분이나 요소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그 자체로서 전체성으로 구성된 구조나 갖고있는 특질)다.

  1. 마르크스주의의 행동 이론은 다윈의 환경주의 형식을 취한다.

  • 다윈은 개인의 특성을 선택하는 토대로서 환경적 조건들을 활용한다.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는 환경의 변화로 말미암은 개인적 변화와 그것이 선택하는 속성을 다룬다.

  • 인간의 환경은 인간의 의식적인 행위에 의해 구성된다. 

  • “공교육의 핵심은 교육을 통해 아동의 잠재적인 역량을 발전시키기 위한 사회적 선택으로 요약된다.” _1926/1997b, p317

  • 진화론이 해부학적 구조와 행동, 환경의 유기적 통합을 이끌었듯이, 마르크스의 환경주의는 의식과 사회조건들의 유기적 통합을 이끈다.

  • 생산양식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의 신화와 혼란, 환상과 기만을 이해하는 것을 포함한다.

  • 객관적이고 외적이고external 비판적인 마르크스주의의 심리학이 요구된다. 그것은 외부적 관점으로부터 문화를 객관적으로 조망하는 작업이다.

  1. 사회조건들에 내재된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의 근거는 사회 혁명과 정신 혁명에 관한 혁신적인 이론이다.

  • 의식과 환경의 유기적인 결합은 환경이 만들어 내는 의식을 변화시키기위하여 환경을 바꾸는 것을 요청하기 때문에 혁명적이다.

  • “시민사회에서 어떠한 계급도 자신의 직접적인 처지에 의해서, 물질적 결핍에 의해서, 자신의 사슬 자체에 의해서 속박되어 있다고 느끼기 전에는 보편적 해방에 대한 욕구와 역량을 품지 못한다.”Marx and Engels, 1975, p.186

  1. 심리학을 바로 세우고 변화의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사회조건들에 대한 마르크스의 설명

  • 어떤 사회조건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 마르크스의 사회이론은 역사 유물론이다. 이 이론은 사회를 정치경제, 생산양식과 같은 것을 포함하는 거시문화요인들이 조직화된 체계로 이해한다.

  • 종교, 가족, 국가, 법, 도덕, 과학, 예술 등은 특정 생산양식일 뿐이며, 그 보편적인 법칙에 따른다.

  • 생산양식은 다양한 문화요인들의 기본적인 일관성을 제공한다. 다양성은 통일성과 일관성 속에 존재하고, 통일성과 일관성은 차별적인 거시문화요인들 속에서 다양화된다. 통일성도 다양성도 절대적이진 않다.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에 의해 매개된다.

  • 마르크스의 원뿔 사회 구조는 과학적 모형의 핵심이다. 원뿔 구조는 이른바 간결의 법칙(다른 모든 요소가 동일할 때 가장 단순한 설명이 최선)의 과학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한 필연적인 것이다. 이 법칙은 어떤 현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은 소수의 기본적이고 포괄적인 구조에 따라 정합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파편적이고 우연적인 요소나 연관성은 다루지 않는다. 간명하고 정합적인 체계를 환원주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 [질문] 그러나 간명하고 정합적인 체계는 단순한 환원주의로 수렴하지 않는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1. 심리학과 사회 변혁

  • 생산양식 혹은 정치경제를 핵심으로 하는 원뿔 모형 속의 조건들을 조직하는 것을 일컫는다.

  • 마르크스주의-심리학적 방법론은, 어떠한 대안적 사회 체제가 문화와 정신을 격상시킬 수 있는가에 관한 과학적 분석

  • 새로운 조건들은 새로운 형태의 욕구들을 발생시킬 것이다.

  • 한 가지 생산 방식에 종속되는 것을 벗어나 사회의 요구와 자신의 적성에 부응하는 생산 방식으로 옮아갈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폭넓게 발달한 자신의 능력을 완전하게 실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것이 실현될 때, 계급은 필연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1. 기존 사회 내의 사회적 정신적 문제를 야기하는 구체적인 정치경제학적 조건들을 규명하라.

  2. 대안적 생산양식 속의 이러한 원인들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과학적으로 연역하라.

  3. 대안적 생산양식을 준비하고 추진하고 지원하기 위한 기존 사회 내의 우호적인 조건들을 규명하라.

  4. 위 세 가지는 기존 사회의 본질과 엥겔스가 묘사한 살맛나는 사회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의식을 위한 물적 조건들이다.

  5.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새로운 사회적 의식의 추가적인 조건성을 규명한다. 이것은 사회 속에서 민중이 차지할 위치다.

  6. 사회조건들은 사회적 의식을 위한 필요조건일지언정 충분조건은 아니다.

  7. 노동계급의 조직화를 통해 사회적 의식을 진전시키는 것은 순수한 지적 행위가 아니다. 이것은 조건을 변혁시키는 혁명적 정치 행위다.

  8. 기존 사회의 정치경제와 사회적 의식의 혁명적 변화는 사회 현상에 관한 모든 개념 속에 반영되어야 한다.

  9. 조건화된 조건성은 변화의 실현을 제한한다.

  10. 개인적 이슈들은 사회적 정신적 형성과 변혁의 문화적 조건화 속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지 않다.

 

3. 마르크스의 사회의식 분석을 심리학에 적용하기

문화심리학은 다음과 같은 것을 통해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을 발전시킨다.

  1. 마르크스주의 역사적-유물론적 사회철학을 풍성하게 하는 문화 심리학 이론에 공헌하기

  2. 이 이론을 특정 심리 현상에 적용하기

  3. 심리 현상의 문화적 기원, 조직, 조작, 사회화, 관리, 사회적 기능을 연구하기 위한 방법론 개발하기.

  4. 마르크스주의 심리학 이론을 검증하고 교정하기 위한 실증적 연구 수행하기

  5. 문화적-환경적-정치적 지원과 자극을 통해 심리학을 풍부하게 할 개인 상호 간 개입 방법 개발하기

  6. 심리학적 성취와 발전을 포괄적으로 자극하고 지원하는 방법을 통해 문화 환경을 변혁하기 위한 사회 정책 개발하기

  7. 마르크스주의를 심리학 이슈들에 적용하고 이 이슈들을 마르크주의에 적용하기.

 

문화심리학의 세 가지 접근법

  1. 거시문화요인 또는 생산양식과 심리학을 연결 짓는 마르크스주의적 가닥(문화-역사심리학)

  2. 심리학을 거시문화요인들과 연결 짓되, 심리학과 문화요인들을 생산양식으로까지 확장하는 않는 가닥(“거시문화심리학macro cultural psychology”)

  3. 개인적 심리기제에 관심을 두고 문화적 구조를 거부하는 주류 심리학의 방향을 문화심리학으로 인도하는 가닥. 자신의 개인적 욕구를 자기가 바라는 대로 적응시키기 위해 지각하고, 해석하고, 선택하고, 거절하는 신자유주의(“미시문화심리학micro cultural psychology”)

[질문] 교차문화심리학(비교문화심리학)은 왜 거대 변인들이 파편화되고 추상적이고 탈역사적이고 탈정치적인가? - 126쪽

거시문화심리학자, 마르크스주의 문화심리학자, 마르크스주의자 사이의 상동 관계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문화적 요인과 심리학적 요인에 부과하는 것에 의한 권력관계를 밝혀 준다. 마르크스주의는 정서가 거시문화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까닭을 설명해 준다.

문화심리학은 문화가 정신을 조직하고 조작하는 특정 과정과 기제를 규명한다.

문화심리학자들은 문화학습이론을 개발하는데, 이 이론은 인간 정신이 문화적으로 형성되고 실행된다는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을 전반적으로 지지해 준다.

 

문화적 역량과 기능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 유기체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 145쪽


[질문] 저자는 인간의 의식과 지각은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그러한 문화는 사회 체제를 바탕으로하고 있으니 그 사회체제를 점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혁명을 통해 전복하자는 것이 아닌가?
[질문] 문화심리학으로 비고츠키를 포섭하지 않고, 왜 굳이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으로 비고츠키와 문화심리학을 포섭하려하는가? 

마음이 심란한 여성은 소비주의적 가치나 행위에 의존하거나 혹은 보수적, 자기중심적, 개인주의적 가치나 실천에 의존함으로써 자신을 지켜 갈 것이다. 그녀 스스로 이것을 창안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것을 자신의 욕구에 맞게 활용했다는 의미에서 개인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사회 속에서 독립적인 위치에 따라 생성되는 구체적인 형태의 문화적-심리학적 욕구다. - 153쪽

 

상품을 향한 소비자의 열망은 단지 자본주의가 심어준 소비 심리의 표출일 뿐이다. 이것은 이성적 사고와 해방적 정치 신념에 입각한 진정한, 개인적인, 주체적인 욕망이 아니다. 

[질문] 이성적 사고와 해방적 정치 신념에 입각한 진정한, 개인적인, 주체적인 욕망이란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이 마음mind을 문화요소로 간주하는 것을 살펴봤다. (중략) 인간 마음을 사로잡고 마음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것은 사회 체제다. 훌륭한 창의성과 발달을 추동하는 것도 사회 체제다. - 155쪽

 

4. 비마르크스주의 심리학 이론을 마르크스주의 심리학과 통합하기

거시문화심리학은 마르크스주의가 아님에도 이례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양립하는 성격이 있다. 그래서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둘 사이에 양립하지 않거나 대립적인 측면은 전혀 없다. - 160쪽

[질문] 거시문화심리학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 양립하지 않거나 대립적인 측면은 전혀 없다면 같은 것으로 간주해도 무방하지 않나?

절충주의-상호작용주의는 과학의 기본 원리인 논리적 정합성에 위배된다. 이 원리가 이른바 간결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 161쪽

양립할 수 없는 체계들을 결합하는 대신, 우리는 먼저 프로이트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에 내재한 본질적인 비양립성을 설명해야 한다. - 163쪽

프로이트의 정신물리학은 페히너의 물리학 원리를 차용했다. 충족되지 않은 정신 욕구는 불안과 부정적인 긴장 상태를 유발한다는 정신물리학의 법칙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프로이트와 비고츠키, 마르크스주의, 문화심리학과 통합될 수 없다. 근본적인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튼튼한 문화적 방향성을 지닌 좋은 심리학자는 정신물리학을 설명 근거로 삼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나쁜 심리학을 정당화한다. 전자가 후자를 생산한 것인 아니다. - 168쪽

 

화해할 수 없는 것과 함께하기는 불가능하다. 유일한 해결책은 어느 하나의 기준에 따라 다른 하나를 바꾸는 것이다. (중략) 적응은 다른 것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본질적으로 화해 불가능한 한 요소를 파괴하는 것을 요청한다. 절충주의는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성격을 보존한 채로 서로 다른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화와 다르지 않다. 무릇 열등한 요소가 우월한 요소를 변화시키는 법이다. - 175쪽

 

마르크스주의와 문화심리학을 정신분석학 밑에 둘 것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을 마르크스주의와 문화심리학의 밑에 두어야 한다. - 179쪽

프로이트가 그랬듯이, 정신분석학은 개인 희생자들에게 비판을 향함으로써 무딘 사회적 비판을 제기할 뿐이다. - 182쪽

2부 비고츠키 심리학의 마르크스주의적 인식론과 방법론

 

2. 비고츠키 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방법론의 토대 리지아 마르시아 마르틴스

 

3. 인간 발달에서 노동, 의식, 기호의 문제 다니엘레 누네스 엔히크 실바·일라나 레모스 데 파이바·라비니아 로페스 살로마웅 마지올리누

 

4. 비고츠키 과학의 생식세포 앤디 블런던

 

5. 비고츠키 심리학 이론의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들 피터 페이겐바움

비고츠키의 역사 분석: 역사의 결은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으로 구분된다.

계통발생(자연선택에 기초한 생물학적 진화) / 보편적인 역사(인간 역사) - 인간의 인류학적 기원 + 인간 문명

비고츠키의 사회역사적 분석 - 인류학적 기원(자연법칙) + 정치경제, 계급사회의 발달 (인간의 노동 활동)

 

엥겔스는 현생인류의 조상이 점차 손으로 만들기와 석기 사용에 의존하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이들이 석기 사용에 능한 후손을 선호하는 선택적 양육과정을 진전시켰다고 주장했다. - 276쪽

[질문] 엥겔스의 도구 사용의 능숙도에 따른 선택적 양육설(진화)은 지금도 유효한가?

도구 사용의 능숙도에 따르면 에뮬레이션 학습을 하는 침팬지가 오히려 더 도구 사용을 능숙하게 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사회적 두뇌' 가설이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요? 관련 자료는 링크 참조. https://jongbosam.tistory.com/391

 

비고츠키는 계급투쟁의 조건하에서 동일한 정신과정이 개인의 사회 계급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간다고 주장하였다. - 276쪽

 

사회 속 개인의 생애사(개채발생)

생물학적으로 아동은 독특한 문화도구(언어)를 획득하면서 성장과 동시에 발달을 이룬다.

 

발달의 문화적 차원 = 사회적 경험 + 개인적 경험

 

정신체계의 발달이 역사적, 시기별로 다르다.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 속에서 기억력의 발달 과정이 서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연령에 따라, 사회에 따라, 역사적 시기에 따라 다를 것이다.


[질문] 정신 발달의 보편 이론이 정립되었는가? 정립될 수 있는가?

생각과 말: 생각과 말 사이의 긴장이 상이한 생물학적 단계와 상이한 발달 단계를 낳는다.

'언어적 사고verbal thinking' = 생물학적으로 유전된 생각하기 체계 + 문화적으로 전승된 말하기 체계

유아는 의미 있는 대화적 소통을 꾀하고자 의도적으로 자신의 첫 말을 성인을 향해 내뱉는다. (전체적이던 것에서 분절화를 향해가는 생각하기와 파편화 되어 있던 것에서 정교화를 향해가는 말하기가 대립과 통일을 하며 발달한다. 마르크스이론에서는 정치와 경제의 대립과 통일)

언어적 사고의 발달과 네 가지 형성 시기

12~18개월 - 낱말words - '혼합적 더미syncretic heaps'

18개월~3세 - 구절phrases - '복합체complexes'

3세~7세 - 문장sentences - '전개념pre-concepts'

7세~12세 - 이야기narratives - '개념concepts'

 

낱말 의미: 분석 단위인 '낱말 의미'가 시기별, 규모(scale)별로 어떻게 언어적 사고에 적용되는가?

'낱말': 외부로 향한 언어적 사고 활동의 객관적, 문화적, 언어적 측면

'의미': 내부로 향한, 주관적, 개인적 의미론적 측면

언어적 사고 현상 = 낱말과 의미의 통일 -> 더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 '낱말 의미'('세포')

사회적으로 결정된 기호 혹은 낱말의 의미는 공유될 수 있는 일반화의 결과이다.

사회적 소통(말)과 개념적 일반화(생각)는 동전의 양면이다.

언어적 사고의 세 가지 특질 - '사회적 상호작용', '의사 소통', '언어 구사'

 

A와 B의 대화 과정과 공 던지기 비유

A가 던진다. -> B가 받는다. -> B가 되던진다. -> A가 되받는다.

개인 간 활동에 초점을 둘 경우(A->B, B->A), 개인의 말은 생각 전달 수단(매개체)

개인 내 활동에 초점을 둘 경우(B->B), 개인 내 활동?

 

바흐친은 대화를 해석하기 위한 아이디어로 ‘발화utterance’ 단위나 말 주고받기를 제안

‘분별력sense’ = 특정 낱말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 화자와 청자가 공히 참고해야 할 의사소통적 언어 사용 맥락이다.

입말 소통 = 입말 발화의 자구적 의미 + 언어 사용 맥락

낱말 의미 = 말의 단위 = 생각의 단위

개인적 말: 언어적 사고가 개인에게 자기화되는 과정(기능적 내면화)

개인적 말personal speech = 자기화 / 개인간 말

‘혼잣말’(18개월~7세) - 타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입말. 의사소통을 자기화하는 것 = 구조적으로 개인간 말 = 기능적으로 내적 말

‘내적 말inner speech’(7세~12세) = 생각한다.

혼잣말에서 내적 말로의 구조적 전환: 자기조절과 고등정신기능 발달의 근간

개인적 말이 개인 간 말에서 분리 -> 혼잣말에서 내적 말로 질적 변화 -> 개인적 말과 개인 간 말과 재회

결론: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과 비고츠키의 발달 과정과 이행 사이의 형식적 유사성

[질문] 이렇게 정리하는 게 맞나? 어떻게 생각하나? 인위적으로 유사성을 결합한 것은 아닌가?

 

마르크스 이론

비고츠키 이론

원시 단계

‘원시 공산주의’

‘소박한’ 개인 간 말(혼합적 사고)

경로 분화

지배자/피지배자

개인적 말/개인간 말

 

지배자가 부를 축적

이해력이 자기화되어 정신에 축적

분화의 발달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

전개념적 사고 -> 개념적 사고

 

구매자는 상품을 사용가치로 만남

판매자는 상품을 교환가치로 만남

청자는 발화를 사용가치로 만남

화자는 발화를 교환가치로 만남

가치형태

인간(노예제) -> 토지(봉건제) -> 화폐(자본주의)

복합체적 사고(구절 단계) -> 전 개념적 사고(문장 단계) -> 개념적 사고(내적 말 단계)


[질문] 비고츠키의 심리학 구분은 아직도 유효한가?

 심리학을 유물론 철학에 기초한 '자연 과학적' 방법을 구사하는 것과 관념론 철학에 기초한 '유심론적' 내관법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보는 비고츠키의 심리학 구분은 아직도 유효할까요? 저는 문화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인간으로서 가지는 보편성이 있지만(인간은 어디를 가든 똑같다는 입장), 개별성(인간은 공간적, 시간적인 환경 제약에 의해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가진다, 즉 다르다는 입장)이 있으며 보편성에 천착할 수록 행동심리학자의 입장, 개별성에 천착할 수록 민속학자의 입장에 가깝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보편성을 참조하며 개별성이 나타는 이유를 유추하거나, 인간의 보편성이 과연 보편적인가 검토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저의 이러한 생각이 그저 타협하는 절충주의(너도 옳고 나도 옳다, 모두 옳다)가 아닐까 고민입니다.

 

아래는 <문화심리학> 참고자료입니다.

정신은 문화로부터 독립되어 있는가, 아니면 서로 얽혀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문화 심리학의 현대적 화신의 아버지로 여기는 리처드 슈웨더Richard Shweder는 심리학의 많은 분야(그가 일반 심리학general psychology이라고 부르는 것)가 정신mind은 선천적으로 내용이나 맥락에서 독립된 자연법칙이나 보편법칙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가정한다고 주장한다(Shweder, 1990). 그는 일반 심리학이 인도하는 가정은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노래 가사 속에 포착된 가정이라고 주장한다: “사람은 어디를 가든 똑같다.” 확실히,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 사람들은 정말 똑같고, 몇몇 연구자들은 모든 문화에서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기록하려고 시도했다. 예를 들어, 모든 문화에서 사람들은 10에서 70개의 음소를 사용하여 언어를 말하고, 그들은 행복할 때 모두 미소짓고, 모두가 검은색을 가리키는 단어를 가지고 있고, 모두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근친상간이라는 생각에 역겨워하며, 숫자 2를 이해한다.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들의 목록은 매혹적인 책 <<Human Universals>>(Brown, 1991)의 12쪽짜리 챕터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 보편성에 관한 연구는 비록 엄청나게 도전적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마음이 작동하는 보편적이고 변치않는 방식을 찾아냄으로써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주요한 면에서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똑같지 않다. 예를 들어, 어떤 언어에서는 대명사는 생략할 수 있는 반면 생략할 수 없는 곳이 있고, 어떤 문화에서는 사람들이 당황할 때 혀를 깨물지만 그렇지 않는 곳이 있으며, 어떤 문화에서는 파란색이라는 낱말이 없고, 어떤 문화에서는 사촌간의 근친상간이라는 생각에 역겨워하지만 그렇지 않는 곳이 있고, 그리고 어떤 문화에서는 사람들은 숫자 5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의 다양성에 관한 연구또한 인간의 본성과 정신이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알려주는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인 일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전에 입문 심리학 강좌를 들은 적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살펴봤던 질문들을 되돌아보라. 그것은 주로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것에 대한 과정이었을까, 아니면 일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과정이었을까? 슈웨더는 일반 심리학자들은 아마도 당신의 입문 심리학 과정에서 포착된 바와 같이 문화적 다양성보다는 인간의 보편성에 더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슈웨더는 보편성에 대한 이러한 관심은 일반 심리학자들이 정신에 대한 생각을 사고하는 내용이나 사고하는 맥락과는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매우 추상적인 중앙처리장치(CPU)로 가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한다. 슈웨더가 보는 바와 같이 일반 심리학의 근본적인 목표는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보편적이고 자연적인 법칙의 집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자연 그대로의 CPU가 작동하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제공하는 것이다. 맥락과 내용은 CPU의 기능을 인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흐리게 하는 원치 않는 노이즈로 간주되며, 따라서 CPU의 가장 순수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실험실의 고도로 통제된 환경에서 정교한 실험을 수행한다. 여기서 컴퓨터 은유는 우연이 아니다; 사실, 컴퓨터의 CPU는 광범위한 기능을 내용이나 문맥과는 독립적으로 수행한다. 서로 다른 반도체 사이의 배선은 그들이 속해 있는 맥락이나 그들이 처리하고 있는 내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컴퓨터로서의 정신은 일반 심리학 안에서 너무나 강하게 받아들여져 온 은유법이라 많은 이론들이 인간의 뇌를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적용하였다.

일반 심리학의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사고방식에 있어 중요한 문화적 다양성은 단지 기본 CPU의 운용 밖에 놓여 있는 문맥과 내용의 변화를 제공할 뿐이기 때문에 존재할 수 없다. 만약 문화적 차이가 심리학 연구에서 나타난다면, 이 보편주의자의 관점에선 해석 오류나 심리실험에 참여하는 사람의 친숙도와 같은 다양한 노이즈 원천에의한 오염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에게있어서 CPU는 모든 맥락에서 보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를 반영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일반 심리학에서는 거의 모든 인간의 심리는 비슷한 방식으로 보편적으로 경험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문화심리학자들이 대체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정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정신은 생각하고 있는 것과 독립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사고는 단순히 보편적인 CPU의 작동만이 아니다; 사고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내용과 상호작용을 하고, 생각하고 있는 맥락에 참여하는 것을 포함한다. 문화심리학자들은 정신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식, 무기, 성적 동반자 또는 신성한 의식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여부를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높였는지, 법을 위반했는지, 아이에게 애정을 보여 주는지, 아니면 종교적 교리에 부합하는지를 고려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게다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은 문화적 지식이 그 행동들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형성하는 매우 구체적이고 특별한 방법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인간은 문화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 생각, 감정이 문화적인 정보에 녹아있으며, 이 정보는 이러한 행동, 생각, 감정을 의미 있게 만든다(자세한 논의는 Bruner, 1990 참조). 즉, 이러한 행동, 생각, 감정은 그 밖의 다른 것들과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대학생이 카푸치노를 먹으러 나가는 단순한 행동은 그 학생이 갈증을 해소하러 가는 것일 수도 있고, 다이어트를 그만두었다는 걸 보여주거나,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정신을 차리려 노력하는 것이거나, 또는 연애 상대를 쫒을 기회를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일한 행동이 다른 의미를 취할 수 있으며, 가능한 잠재적인 의미는 그 의미가 발생하는 문화적 맥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다른 문화적 맥락에선  여성들이 스스로 커피숍에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볼 수 있고, 사람들이 현재 체중보다 적은 이상적인 체중을 위해 분투하지 않고, 에너지를 얻기 위해 인위적인 자극을 찾는 것은 죄악으로 여겨질 수 있고, 연애 상대는 개인이 스스로 찾아내는 것보다 전형적으로 가족이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미국 대학생이 커피숍에 간 경험에서 도출될 수 있는 동일한 의미의 배열은 모든 문화권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것 대신에 그곳에서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의미의 배열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서 의미를 찾고, 문화를 구성하는 공유된 사상은 사람들이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종류의 의미를 제공한다. 따라서 문화적 의미는 정신이 작용하는 방식과 얽혀 있으며, 우리는 정신이 그 문화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일반 심리학에 대한 문화 심리학의 도전은 다소 이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정신이 문화적 영향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경험적 증거가 있는가? 이 책의 나머지 대부분은 그러한 증거를 제공할 것이지만, 지금 간결하나 함축적인 예를 하나 들겠다. 그림 1.1의 상자를 보라. 선이 있는 이런 종류의 상자는 그림선figure-line 과제로 알려진 일에 쓰인다(Kitayama, Duffy, Kawamura, & Larsen, 2003). 이 과제에서 참가자에게 그 안에 선이 그려진 상자를 보여준다. 그런 다음 두 개의 작은 상자를 보여주고 (a) 첫 번째 상자에 상단 “자극” 그림에서 보이는 선과 길이가 동일한 선을 긋고(이를 절대 길이 과제라고 한다), (b) 두 번째 작은 상자에는 원래 선이 자극 상자에 비례하는 것과 동일한 선을 긋도록 요청한다(약 ⅓ — 이것은 상대 길이 과제라고 한다).

 

 

그림1.1 스스로 해보시오: 분석적Analytic  인식 vs 총체적holistic  인식

 

“자극stimulus”을 보시오. 선의 길이를 측정하지 마시오.

 

“절대 과제” 사각형에서 “자극”사각형 속 선의 절대 길이에 최대한 가까운 선을 그린다. 그런 다음 “상대 과제” 사각형에서 “자극”사각형 속 선의 상대 길이에 최대한 가까운 선 즉, 선은 “상대 과제” 사각형의 3분의 1 높이여야 한다. 선을 긋고 각각의 선을 자로 재라.

 

결과: “절대” 선의 길이는 12mm여야 한다. “상대” 선의 길이는 6mm이어야 한다.

 

설명:

9장에서 더 알아보겠지만, 서양 문화권 사람들은 절대 과제를 더 잘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인이 아닌 문화권 사람들은 상대 과제를 더 잘 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과제를 더 정확하게 했나? 당신의 문화적 배경을 볼 때 이 결과는 연구자들이 기대하는 것과 일치하는가?

 

그림 1.2 미국인들은 상대 과제를 수행할 때 이러한  (의도적intentional 통제와 관련된)부위의 활성화 정도를 더 많이 보여준다. 동아시아인은 절대 과제를 수행할 때 이와 같은 부위의 활성화를 더 많이 보여준다(Hedden et al., 2008).

 

한 연구에서, 유럽계 미국인의 문화적 배경을 가졌거나 최근 동아시아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을 사용하여 두뇌를 스캔하는 한편, 그림 선figure-line 과제(Hedden, Ketay, Aron, Markus, & Gabrieli, 2008)로 판단을 내렸다. 결과는 그림 1.2에 나타나 있다. 유럽계 미국인은 상대 길이 과제를 완료했을 때, 절대 길이 과제를 완료했을 때보다 왼쪽 아래마루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과 오른쪽 중심앞이랑(precentral gyrus)에서 더 많은 활성화가 나타났다. 뇌의 이 두 영역은 모두 주의력 조절과 연관되어 있는데, 이는 상대적인 길이 판단이 유럽계 미국인에게 더 어려웠고 절대적인 길이 판단보다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음을 나타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아시아인들이 같은 판단을 했을 때, 상대 길이 1에 비해 절대 길이 과제를 완성했을 때 주의력 조절의 증거를 더 많이 보여주었다. 즉, 동아시아인들은 절대적인 길이의 판단이 특히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훨씬 이전의 연구(예: Kitayama 외, 2003)를 복제한 결과로서 분석적 추론과 전체론적 추론의 문화적 차이를 나타낸다. 이것은 9장에서 더 자세히 탐구할 것이다. 그리고 같은 과제가 문화 전반에 걸쳐 다른 패턴의 뇌 활동을 이끌어낸다. 동아시아인들과 유럽계 미국인들이 살면서 겪었던 경험들이 그들의 뇌가 줄의 길이를 추정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에도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다르게 형성하게 한다. 이것은 마음과 문화를 어떻게 구분할 수 없는가를 보여주는 예다; 마음은 그 경험에 의해 형성되고, 문화는 그들이 제공하는 경험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어떻게 문화적 경험에 의해 뇌가 형성될 수 있을까? 컴퓨터로 비유하는 두뇌의 효용성이 실제로 무너지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여기에 있다. 컴퓨터와 달리, 뇌는 그들의 경험에 대응하여 계속해서 변화하고, 성장하고, 다시 연결된다. 뇌는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특히 우리가 어렸을 때, 매우 가소성이 높다. 우리의 하드웨어는 우리가 하는 일의 반응에 따라 변화한다. 한 유명한 예는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다. 런던의 택시기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복잡한 도로망 속에서 길을 찾아 가야하는 일상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그들은 몇 년 동안 경험을 쌓으면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되는 상세한 멘탈 지도를 만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신적 지도를 통해 길을 찾는 그들의 경험은 실제로 그들의 뇌의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해마의 뒤쪽 부위는 항법에서 공간적 기억을 용이하게 한다(O'Keefe & Nadel, 1978). 실제로 음식 저장을 위해 공간적 기억력에 의존하는 작은 포유류와 새들은 다른 유사 종에 비해 해마에 유난히 큰 용적을 가지고 있다(Lee, Miyasato, & Clayton, 1998). 비슷하게, 런던의 택시 운전사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해마의 뒤쪽 부위가 더 크게 발달했다. 뛰어난 항해 기술(그리고 큰 해마 후부)을 가진 사람들이 택시 운전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택시를 운전하는 것이 더 나은 항해 기술과 더 큰 해마 후부로 이끈다. 이 연구는 런던의 택시 운전사가 택시를 오래 운전할수록, 그의 해마 후부가 더 커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Maguire, Gadian, Johnsrude, Good, Ashburner 외, 2000).

이 연구만 독특한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연구들에서 사람들이 저글링을 배우거나(Draganski 외, 2004; 그림 1.3) 명상 연습을 할 때(Hölzel 외, 2011) 뇌의 특정 부위에서 회백질의 양이 증가하는 것과 같은, 경험에 반응하여 뇌의 물리적 측면이 변화한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접하는 경험은 궁극적으로 뇌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 뇌의 본질은 태어날 때부터 고정되어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특정 경험에 대한 반응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문화는 사람들에게 매일 특정한 일련의 경험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적 영향이 그들의 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비록 전 세계 사람들은 모두 비교적 같은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문화적 경험을 통해 다른 두뇌를 갖게 된다.

 

그림 1.3 경험은 뇌를 형성케 한다. 사람이 저글링을 배울 때 뇌 스캔에서 강조된 부위의 회백질의 부피가 증가하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심리학자들은 심리과정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특정한 문화적 생각(예: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다고 믿는 것)에 직면하는 정도까지, 그들은 그 생각에 대해 크게 생각하여,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풍부한 생각, 행동, 감정 네트워크를 형성할 것이다. 이러한 정보 네트워크는 그들이 듣는 대화,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억,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혹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이 아이디어에 대해 염려하고 있는 그들의 인상 등, 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것을 마주할 때마다 활성화될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이러한 정보망을 충분히 자주 고려한다면, 네트워크는 만성적으로 활성화되어야 하며, 그렇게 해서 그들이 생각나서 활성화될 가능성이 낮은 다른 정보 네트워크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문화는 구성원들이 자주 접하는 관념이 다르기 때문에 구성원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생각, 행동, 감정의 네트워크에서도 차이가 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문화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게 된다.

따라서 많은 문화 심리학자들은 내용과 맥락의 잡음을 벗겨내 제거한 다음 그 정신을 이해하려는 일반 심리학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볼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의미에 의해 지속되기 때문에, 이 의미를 표백하여 근원적인 CPU를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려는 어떠한 노력도 마음이 실제로 무엇인지 왜곡하고 잘못 전달하게 될 뿐이다. 인간은 그들의 문화 세계에 너무 깊이 속해 있어서 항상 문화 행위자로 행동하고 있으며, 그들의 사고는 항상 그들의 문화에서 파생된 의미에 의해 유지된다. 사람들이 그들의 문화적 의미 체계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인간처럼 생각하기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이것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Geertz, 1973 참조). 사람들의 생각은 영원히 그들 자신의 문화적 의미 체계 속에 묶여 있다.

많은 문화심리학자들은 문화와 정신이 서로를 형성하기 때문에 문화는 마음과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문화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정신의 상호작용에서 나오고, 문화는 그 정신이 작용하는 방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문화는 종종 그들의 관행, 제도, 상징, 공예품, 신념, 가치관에 있어서 극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행동하고, 느끼는 방식 또한 중요한 면에서 달라야 한다. 따라서 문화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 사이에서 심리 과정에서의 상당한 차이를 발견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책의 나머지 장들은 그러한 차이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3부 비고츠키 마르크스주의의 심리학적 적용

 

6. 상상력과 창의 활동 : 비고츠키 이론에서 존재론적 원리와 인식론적 원리 카티아 마헤이리·안드레아 비에이라 자넬라

 

7. 비고츠키의 방법론적 이론틀 속의 유물 변증법 : 응용언어학 연구를 위한 함의 제임스 랜톨프

 

8. 비고츠키에 대한 구성주의적 해석 : 이론적-방법론적 언어 개념 연구 에두아르도 모우라 다 코스타·실바나 칼보 툴레스키

"만약 사물의 현상과 본질이 일치한다면, 어떠한 과학도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사물이 거울에 자기 모습을 드러내듯 개념이 우리 눈에 비친다면 개념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물의 현상은 언제나 일면적이며 전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것은 그것의 다면적인 특성을 분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과학적' 개념의 기능이다. - 362쪽

 

구성주의는 절충주의로 특징된다. 이것은 서로 다른 체계를 구성하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존중하지 않고 선험적인 도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완전히 상호 대립적인 학자들을 병치시키려 한다. 비고츠키, 바흐친, 비트겐슈타인, 푸코 등의 사상가들 이론의 총체성은 구성주의적 파노라마에 짜 맞추기 위해 산산이 찢겨져 버린다. - 365쪽


[질문] 구성주의가 왜 절충주의인가?

 앞서 구성주의를 절충주의로, 다문화적 접근도 절충주의로 치부하는 것을 느낍니다. 보편성에 포섭되어야지 문화적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는다는 논점이 자주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공부한 <문화심리학> 부분을 옮겨봅니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화가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접촉하고 있다. 다문화 공동체에서 집단 간 차이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공유하는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고, 어쩌면 인간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그러한 차이점들을 무시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러한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그러한 차이를 힘의 원천으로 보아야 하는가? 이는 사회와 심리학자를 갈라놓는 민감하고 논쟁적인 사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떤 면에서는 "어딜 가든지 사람은 똑같다." 이러한 관점을 취하는 것을 “색맹color-blind”(또는 “문화맹culture-blind”) 접근법이라고 하며, 많은 사람이 이 사고방식mind-set을 최선의 의도로 채택한다. 이 접근법에 깔린 바람은 사람들이 누구의 민족적 배경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일부 인종 평등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인종에 기반한 차별을 중단하는 방법은 인종을 기반으로 차별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한다(지역사회 학부모 대 시애틀 1학구 사건 Parents Involved in Community Schools v. Seattle School District No. 1, 2007, p. 2768). 그래서 아마도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문화적 차이에 관심을 두는 것을 멈추고 대신 사람들의 공통적인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연구에서 사람들이 "우리 대 그들"의 사고방식을 채택하고 다른 그룹보다 자신의 그룹을 선호하는 것으로 매우 쉽게 이끌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Gaertner, Mann, Murrell, & Dovidio, 1989). 이러한 전통 연구는 사람들에게 두 집단이 있고 그들 중 한 집단에 속해 있다고 말하는 즉시, 두 집단을 차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일관되게 발견하는데, 두 집단의 사람들이 다른 집단보다 그들 집단의 사람들을 더 잘 대한다. 이러한 차별은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예술을 선호하느냐,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의 예술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나눈 집단과 같은 매우 사소한 차이에 근거할 때에도 발생할 것이다(Tajfel, 1974). 집단 간의 차이에 관한 관심은 차별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의 관심이 문화 간의 차이에 끌리지 않으면 자신과 다른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만들 가능성이 작아지고, 그들 모두가 더 잘 지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색맹 전략과 대조적으로, 집단 차이에 참여하고 존중하는 것을 종종 다문화적 접근법multicultural approach이라고 부른다. 이 접근법의 이성적 배경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들의 집단과 강하게 동일시하고 대부분의 집단 정체성은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특히 자신의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작거나 어떤 면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들의 집단과 동일시할 가능성이 크다. 소수 집단은 그들의 집단 정체성을 크게 중시하는 경향이 있고, 그들은 종종 그들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을 무시하려는 다수 집단 구성원들의 노력에 상당히 부정적으로 반응한다(Verkuyten, 2005) 집단의 차이를 과소평가하려는 노력은 소수 집단이 그들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버리고 다수 집단의 사람들처럼 행동하기만 하면 받아들여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문화적 접근법은 사람들이 그들 집단의 독특한 특징에 관심을 두고 제대로 인식할 때 더 나아지리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 상대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관점이 있다. 이 두 가지 접근법을 실험적으로 비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러한 비교 연구의 결과는 상당히 일관적이다(검토는 Apfelbaum, Norton, & Sommers, 2012 참조). 다문화 메시지를 강조하는 집단이 색맹 메시지를 강조하는 집단보다 수많은 측면에서 더 잘한다. 예를 들어, 다양한 회사의 직원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한 광범위한 연구는 다양성에 대한 각 회사의 태도와 직원들의 업무 참여도 사이의 관계를 평가했다(Plaut, Thomas, & Goren, 2009). 백인 종업원이 다문화적(그리고 색맹이 적은) 태도일수록 소수민족 종업원의 업무 참여도 높았다. 이와 유사하게, 소수민족의 종업원들이 특히 회사에서 소수민족 종업원의 수가 적을 때, 색맹 메시지를 제공하는 회사보다 다문화 메시지를 제공하는 회사에 더 많은 신뢰와 위안을 가지고 있었다(Purdie-Vaughns, Steele, Davies, Ditlmann, & Crosby, 2008). 마찬가지로, 유럽계-캐나다인과 제1국First Nations(캐나다 원주민) 참여자들은 색맹 메시지에 노출된 후보다 다문화 메시지에 노출된 후 서로 더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나아가 다문화 메시지는 제1국 참가자들의 자아 안전성을 높이는 동시에 유럽계 캐나다인의 부정적 감정 표현을 줄였다(Vorauer, Gagnon, & Sasaki, 2009). 마찬가지로, 백인 미국인이 색맹 논쟁에 노출되었을 때 그들은 다문화 논쟁에 노출되었을 때보다 소수민족에 대해 더 해로운 방식으로 행동하였다(Holoien & Shelton, 2012). 또 다른 연구에서, 어린아이들에게 다문화적이거나 색맹인 이야기를 해주고, 그 후 백인 학생과 흑인 학생 사이의 폭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Apfelbaum, Pauker, Sommers, & Ambady, 2010). 색맹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다문화적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보다 학생들에게 인종차별에 의한 폭행이라고 확실하게 묘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폭행에 가담한 것이 인종차별에 의한 것으로 보려는 경향이 덜했다. 색맹의 이야기는 분명히 학생들을 차별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에서 차별을 보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백인 학생들도 다문화 메시지를 제시하는 환경에서 색맹 메시지를 제시하는 환경에서보다 더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Richeson & Nussbaum, 2004; Wolsko, Park, Judd, & Wittenbrink, 2000), 백인은 소수민족 구성원만큼 다문화주의를 긍정적으로 강조하려는 노력을 종종 보이지 않는다(Morrison, Plaut, & Ybarra, 2010; Plaut, Garnett, Buffardi, & Sanchez-Burks, 2011). 백인들이 소수민족만큼 다문화적인 메시지에 열광하지 않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색맹 메시지들은 기존의 모든 인종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더 크다(Knowles, Lowery, Hogan, & Chow, 2009).

 

따라서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문화 심리학에 대해 배워야 할 또 다른 좋은 이유를 시사한다.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증가하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더 잘 어울리고, 업무에 더 참여하며, 차별이 존재할 때 그 차별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문화 심리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문화 인식과 문화 지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져 다른 문화간 이해심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Buchtel, 2014). 이러한 연구들은 사람들이 그러한 차이점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로 선택할 때보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가장 잘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질문] '체화된 인지' 접근과 비고츠키적 관점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은?

마음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적 상태나 과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신경적 기능구조인 뇌, 뇌 이외의 몸, 그리고 환경의 3자가 괴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단위로 작용하는 통합체(nexus) 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중심으로 재개념화 되어야 한다고 보는 '체화된 인지' 접근은 제가 생각하기에 비고츠키적 관점은, 생각을 형성하는 물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하고(생생한 경험), 그 물적인 토대는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고, 사람은 활동(노동, 언어)를 통해 그 물적 토대(문화, 역사적)를 바꾼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이 둘이 서로 유사해보입니다. 제가 파악하는 비고츠키적 관점이 맞는지, 맞다면 '체화된 인지'접근과의 유사점이나 차이점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찾아 보기

옮긴이의 말

 

[참고자료] 

변증법적 유물론 위키

https://ko.wikipedia.org/wiki/%EB%B3%80%EC%A6%9D%EB%B2%95%EC%A0%81_%EC%9C%A0%EB%AC%BC%EB%A1%A0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법칙은 다음과 같다.

⑴ 질(質)의 양화(量化)법칙이다. 이것에 따르면 양의 점진적 변화는 질의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다.

⑵ 대립물의 통일의 법칙이다. 이것은 구체적 현실의 통일체는 대립물, 혹은 모순의 통일체임을 의미한다.

⑶ 부정의 부정의 법칙이다. 이것은 대립물의 투쟁 속에서 하나의 대립물은 다른 대립물을 부정하며, 다시 그것은 어떤 양자가 다같이 부정된 명사(名辭)를 보존하는, 보다 높은 차원의 역사적 발전(正-反-合)에 의해 부정됨을 의미한다.

 

변증법은 헤겔이 말한 시대정신(혹은 세계정신)이란 대명사로 풀이할 수 있는데, 독일고전학파는 형이상학의 시대정신이 존재하여, 역사의 변화는 곧 시대정신의 변화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관념적인 시대정신이 아닌 벨 에포크 시대의 영향을 받아 지식과 과학, 그리고 물질적(또는 경제적) 생산구조의 변화에 따라 시대가 바뀐다고 설명하였다. 즉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처럼 형이상학적인 정신이나 이념 등의 관념론적인 상부구조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이 아닌, 경제적 생산력과 사회계층의 변화를 비롯한 하부구조가 역사를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그렇다고 상부구조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움직인다는 이론이며, 이는 영혼 같은 정신이나 관념 등을 부정하고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이 세상을 이루고 결정한다는 종래의 유물론의 주장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에 덧붙여서 헤겔의 변증법을 일부 접목시키면서 변증법에서의 관념적인 요소를 물질적인 요소로 치환하였다.

 

즉 헤겔은 역사와 사회의 발전은 당대의 인민들이 원하는(정확히 풀이하자면 무의식 중에 바라는) 시대정신으로 나아간다고 풀이하였는데, 마르크스는 여기에다가 유물론을 결합하여 궁극적으로 ’사회는 변증법에 따라 변할 것이다. 단 앞으로 미래에는 공산주의 공동체가 '반드시' 도래하게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역사 변화의 과정에 적용한 사적 유물론이다.

 

블라디미르 레닌은 이러한 유물론을 적극 수용하여 프롤레탈리아 독재 실현의 이념적 지표로서 체계화한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변증법적 방법이 헤겔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밝힌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그 근본에서 헤겔의 그것과 다를 뿐 아니라 정 반대다. 헤겔에게는 그가 이념이라는 명칭 아래 자립적인 주체로까지 전환시키고 있는 생각하는 과정이 현실세계의 창조자고, 현실세계는 이념의 외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에게는, 반대로, 관념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이 인간의 두뇌에 반영되어 생각의 형태로 변형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1]

‘정 반대’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변증법 자체와 관련되기보다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관계를 뜻하고 있음을 눈여겨볼 필요 있다. 이어지는 논의들도 관념론과 함께 헤겔의 변증법도 내버리자는 것과 거리가 멀다. “나는 나 자신을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공언하고 가치론에 관한 장에서는 군데 군데 헤겔의 특유한 표현방식을 흉내 내기까지 했다. 변증법이 헤겔의 수중에서 신비화되기는 했지만,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를 포괄적으로 또 알아볼 수 있게 서술한 최초의 사람은 헤겔이다. 헤겔에게는 변증법이 거꾸로 서 있다. 신비한 껍질 속에 들어 있는 합리적인 알맹이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바로 세워야 한다.”(자본1,19) 여기서 마르크스는 ‘거꾸로 서 있다’는 말로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변증법의 일반적 운동형태’라는 말로 그 ‘합리적인 알맹이’를 암시한다. 헤겔의 변증법에 ‘합리적 알맹이’가 없다면 마르크스가 자신을 ‘이 위대한 사상가의 제자라고 공언’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이 ‘합리적 알맹이’의 본질적 의미를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압축해서 설명한다. “변증법은 그 합리적인 형태에서는 부르주아지와 그 이론적 대변인들에게 분노와 공포를 줄 뿐이다. 왜냐하면 변증법은 현존하는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의 부정, 즉 그것의 불가피한 파멸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또 변증법은 역사적으로 전개되는 모든 형태들을 유동상태⋅운동상태에 있다고 여김으로써 그것들의 일시적 측면을 동시에 파악하기 때문이며, 또한 변증법은 본질상 비판적⋅혁명적이어서 어떤 것에 의해서도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자본1,19) 마르크스는 ‘합리적인 형태’의 변증법이 곧 자신만의 변증법이라고 참칭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존하는 것의 일시성, 운동성을 파악하는 비판적 혁명적 본질이야말로 헤겔 변증법의 ‘합리적 알맹이’라고 말하는 셈이다. 엥겔스는 변증법적 방법이 헤겔 철학의 혁명적 측면임을 좀 더 담백하게 명시한다.[2]

 

변증법이 운동과 학문의 주요무대에서 밀려나게 된 데에는 현실사회주의의 패배 못지않게 변증법을 대하는 지식인들의 대응방식들도 크게 기여했다.

 

변증법의 현실적 의미가 그처럼 소멸하게 된 원인으로는 우선 변증법을 간단히 배우고 익혀 현실문제에 즉각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단순화하는 교과서식 논의방식을 들 수 있다. 변증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곧장 헤겔과 정⋅반⋅합이라는 공식을 연상하는 반응방식이 그 전형적 성과다. 간혹 그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부정의 부정, 양질전환, 대립물의 통일 등의 공식을 특정 사안들에 적용하고 싶어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적용이 매끄럽게 이루어질 때마다 변증법을 실현했다고 자부한다면, 변증법은 몇 가지 ‘법칙’으로 박제되기 쉬울 것이다.

웃긴 점은, 헤겔 자신은 정⋅반⋅합이라는 공식을 피했고, 도식적 사고를 신랄하게 야유하기도 했다. 헤겔이 변증법적 인식방법론을 면밀히 펼치고 있는 《정신현상학》을 직접 읽는다면, 변증법을 간단히 도식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일찌감치 꺾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예컨대 그는 형식주의적 사유방법과 관련해, “모든 천상의 것과 현세의 것, 모든 자연적 형태와 정신적 형태들에 몇 가지 보편적 도식의 규정들을 갖다 붙이고 이런 식으로 모든 것을 분류하는 이 방법이 산출하는 것은 삼라만상의 조직에 대한 뻔한 보고서에 지나지 않는다”[5]고 지적하며, 그러한 방법은 “사태의 살아 있는 본질을 생략하거나 감춰버린다”고 비판한다. 심지어 헤겔은 그러한 방법을 “써먹기 손쉬운 것인 만큼이나 금방 배울 수 있지만, 그것이 알려지면 그것을 반복하는 일은 이미 들통이 난 요술을 반복하는 것처럼 참을 수 없게 된다”고 잘라 말한다. 물론 이처럼 도식에 맞춰 현실의 복잡하고 풍부한 문제들을 단순히 파악하는 태도는 마르크스나 엥겔스 혹은 레닌의 경우에도 금물이며, 이 점에서는 이들과 헤겔의 대립구도를 만들어놓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중국 공산당에서 여전히 변증법적 유물론을 중시하고 있으며 시진핑이 직접 변증법적 유물론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 >

 

김태형의 심리학에서 다시 마주하는 마르크스의 세계관이 반갑습니다..^^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서 철학자나 경제학자가 발견하지 못하는 요소를 찾아내는 당시의 심리학자들이 있었네요.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은 사람이 본질이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견해에 기초하고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에서 사회적 존재라는 개념은 기본적으로 해당사회에 속한 사람의 심리나 특성이 사회적 관계에 의해 규정됨을 의미한다. 이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주의의 명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명제는 마르크스가 창시한 사적 유물론의 제1명제이다. 여기에서 ‘사회적 존재’란 사회생활의 물질적 조건과 경제적 관계를 말하며, ‘사회적 의식’이란 그것을 반영하고 있는 정치, 법률, 철학, 도덕적 견해들과 과학, 종교 등을 말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적 존재는 사회적 의식의 원천이고 기초이며, 사회적 의식은 사회적 존재의 반영이며 산물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스크는 사회적 존재는 일차적이고 사회적 의식은 이차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심리학적 용어로 단순화시키면, 마르크스의 주장이란 결국 해당 사회가 인간 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에리히 프롬은 ‘경제제도의 특성에 으해 한 개인에게 정해진 삶의 양식이 그의 전체적인 심리를 결정하는 제1차적인 요소가 된다. 왜냐하면, 자기 보존에 대한 강렬한 욕구는 그에게 주어진 삶이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도록 강요하기 때문이다.’고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했다.”

 

“사람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황량한 벌판 위에서 태어나 살아가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특정한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태어나며, 거기서 살아간다. 고대 노예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대부분 노예로 살아가고, 중세 봉건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농노로, 현대 자본주의 시대에 태어난 사람은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이에 따라 노예와 농노, 노동자의 심리가 각각 달라진다.

마르스크스이 주장은 사실 오늘의 시점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마르크스가 사적 유물론을 창시했던 시대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마르크스의 견해는 올바른 주장이었을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아주 혁신적인 주장이어서 여러 분야의 뛰어난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심리학 분야에서 가장 급진적인 이론가였던 프로이트는 사적 유물론을 일정하게 비판하면서도,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를 다음과 같이 지지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강점은 역사에 대한 입장이나 이에 근원을 둔 미래에 대한 예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제적인 관계가 그들의 지적이고 윤리적이고 예술적인 견해에 미치는 경정적인 영향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에 있다. 이제까지 거의 완전히 무시된 채로 있었던 일련의 상관관계와 의존성이 그와 더불어 발견되었다.’”

 

“프롬은 프로이트처럼 단지 지지를 표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 존재(구체적으로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어떻게 사회적 의식(구체적으로는 정치적 상부구조)을 규정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명확히 밝히기를 원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경제적 기초가 어떻게 해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로 변환하는지를 밝히지는 않았다. 내 생각으로는, 정신분석의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마르크스의 학설에 있는 이 간극을 메울 수 있고, 경제적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를 결부시키는 메카니즘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리비도설(성욕설)을 인정하던 초기에는 ‘경제적 기초 -> 리비도적 구조 -> 정치적 상부구조’로, 그리고 리비도설과 결별한 후기에는 ‘경제적 기초 -> 사회적 성격 -> 정치적 상부구조(이념과 사상)’라는 일련의 흐름을 제시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한다.”(p.33~36)

 

: 김태형 저 <싸우는 심리학> 중에서...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접근과 학문간 융합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75876/1/02.%20%EC%9D%B4%EC%A0%95%EB%AA%A8.pdf

Ⅱ. 인지과학 틀의 변천 역사

제 4의 단계는(1980년대 후반부터 그 영향이 드러나기 시작 하였지만, 21세기의 초 지금에 철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인지과학과 연결된 논의를 전개하면서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한), 마음의 작용에 서 몸과 환경 맥락의 역할을 강조하는 변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입 장은 인간의 마음이 물리적, 사회적 환경 맥락에 적응하는 순간 순간 적 상호작용 신체적 행위 활동상에서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즉 문화, 역사, 사회의 맥락에 의해 구성, 결정되며 작동하는 그러한 마음, 몸 의 활동에 기초한 인지임을 강조하는 접근이다

 

20세기 후반에, 인지과학과 연관지어 논의를 제기한 이러한 움직임의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은 1970년대 이래 꾸준히 고전적 인지과학의 문제점을 지적하 며 하이데거 등의 철학적 관점을 도입하려 한 미국의 철학자 H. Dreyfus 등 이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D. Andler(유럽공동체 연구보고서, 2005, ftp://ftp.cordis.europa.eu/pub/technology-platforms/docs/kte_cognitive.pdf )는 이 움직임을 넓은 의미의 맥락주의(contextualism)의 움직임으로 규정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관심을 갖는 것은 인지과학의 제3의 대안적 틀로 출현한 제 4단계의 <밖으로의 끌음(outwards pull)>(Bechtel, Abrahamsen, & Graham, 1998) 변화이다. 고전적 인지주의에 마음, 인지의 본질에 대 한 사회-문화적, 환경 맥락적 틀을 도입하여 인지과학을 전면적으로 재 구성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입장은 마음과 뇌를 별개의 실체로 개념화한 데카르트적 심신 이원론이나, 생물적 뇌가 부가하는 제약적 속성을 무시한 채 인간의 마음을 기호 조작의 정보처리체계로 개념화한 고전적 인지주의나, 그 리고 생물적 뇌의 속성이 인지와 심적 경험의 속성을 특징지으며 모 든 심적 현상은 생물적, 신경적 상태와 과정으로서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적 유물론의 신경과학적 접근에 대하여 비판적인 설명 틀을 전개하는 것이다. 이 새 입장에 의하면 생물적 뇌의 특성을 무시한 정보처리적 표상주의이든, 인지신경과학적 접근의 ‘뇌=마음’의 심신 동일론적 환원주의의 관점이건 간에 마음의 본질과 특성을 충분히 설 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음을 뇌 내부의 신경적 상태만으로 환원하 는 것은 실제의 역동적인 마음과는 다른, 거리가 있는 부족한 개념화 이며, 뇌, 신체, 그리고 환경 세상이 연결된 통합체 상의 현상으로 마 음을 개념화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체화된 인지’ 접근으로 형성되었다.13)

 

1. 체화된(Embodied) 인지, 연장된(Extended) 마음 

Bem & Keijzer(1996)에 따르면, 인지과학이 현재에 과거 1950년대 의 인지주의의 탄생과 떠오름 시점보다도 더 드라마틱한 전기를 맞고 있으며, 그것은 철학과 심리학, 인지과학에서의 ‘전통적인 데카르트적 존재론/인식론에 기초한 마음(Mind)’의 개념으로부터 탈피하여, 구체 적인 몸이라는 실체를 가지고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출현하는 인 간의 적응 ‘행위’로서의 ‘마음’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21세기 초인 지 금에는 ‘연장된 마음 가설(HEM: Hypothesis of Extended Mind), 또는 HEC(Hypothesis of Extended Cognition)’(Clark & Chalmers, 1998)이 라는 철학적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인지과학의 제 3의 대안적 접근으 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이 접근은 미시적, 신경적 또는 생물적 단위 수준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연결주의와 같은 낮은 설명 수준의 접근, 그리고 그보다 한 수준 위에서 명제 중심으로 논리적 체계에 의해 설명하려는 고전 적 인지주의의 정보처리 접근이 지니는 제한점을 벗어나려 한다. 즉 환경과는 독립적으로 한 개인 마음 내부에서 일어나는 정보의 인지적 표상이나 처리가 아니라, 환경과 괴리될 수 없이 환경-몸-뇌가 하 나의 통합적 단위를 이루는 바탕위에서 행위를 통하여 구현되는 활동 으로서의 마음을 설명하고자 한다. 환경이 인간 인지의 특성, 한계를 규정, 제약하고 인간인지구조가 역으로 환경을 규정하고 변화시키는 그러한 상호작용의 관계 속에서의 인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마음은 뇌 속에서 일어나는 신경적 상태나 과정이라고 하기보다는 신경적 기 능구조인 뇌, 뇌 이외의 몸, 그리고 환경의 3자가 괴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단위로 작용하는 통합체(nexus) 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 중심 으로 재개념화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체화된 인지 관점은 본질적으로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바탕 을 둔 존재론과 그에서 출발한 인식론으로부터 벗어나자는 탈 데카르 트적 움직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이미 일찍이 17세기의 B. Spinoza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고, 스피노자 이후에 몸에 대한 강조는 유럽의 현상학적 철학자들에 의하여 주로 이 어져 왔다고 할 수 있다. 추상화된 마음의 측면이 강조되는 데카르트 의 존재론과는 달리 베르크손, 메를로-퐁티 등의 논의에서는 뇌와 독 립적으로 존재하는 심리적 속성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몸과 마음과 환 경이 하나의 단위를 이룬다. 몸이 환경의 세상과 일체가 되어 적응하 는 과정에서 몸의 행위 하나하나가 마음을 구성한다고 보는 것이다. 체화된 인지 접근은 21세기 초엽 인지과학 내에서 현재로 아직은 통일적인 종합적 틀을 이루지 못하고 다소 산만히 여러 이름 하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고전적 인지주의에서 배제되었던 ‘몸’을 마음의 바 탕으로 되찾게 하며(embodied mind), 마음이 환경 속에 구체적으로 구현되고(embedded mind) 구체적 환경에 상황지워진 인지로써 (situated cognition), 데카르트 류의 공간적 연장됨이 없는 마음이 아 니라 환경에 연장, 확장된 마음(extended mind)으로써 환경과 몸, 마 음이 하나의 단위로 작동하는 그러한 역동적인(dynamic), 그리고 인 간과 환경의 상호작용(interactions) 틀에서 재개념화 할 가능성을, 아 니 그래야 하는 필연성을(Bickhard, 2008)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14